나의 신앙생활은 미국에서 그 정점에 다달았다
일요일마다 교회를 두군데나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
주일의 캠퍼스는 늘 정적이 휩싸였다
광란의 파티가 끝나고 모두들 자고 싶은맘이 가득할때
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회로 향하곤 했다
신앙을 갖는 것이 무엇인지
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언인지
쉽게 그 맥락을 잡을 순 없었지만
늘 주변에는 나를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많은 분들이 계셨던 것 같다
Trinity Baptist Church, VT
미국 남부에 침례교가 많다는 사실은 다 알 것이다
미국의 북쪽 끝에도 극보수적인 침례교회가 있었으니..
그곳이 나를 이끌었던 트리니티 벱티스트 쳐치
드넓은 언덕에 하얀 교회가 너무도 아름다운 곳
찬송이 힘차고 감미로와
늘 영광과 은혜가 감도는 곳
이곳에서 내 인생에 귀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
Sterzbach 목사님,
교회있는 동안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었다
교환학생들이 오면 일대일로 가족을 구성해주는데
나의 가족은 목사님 가족이었다
늘 힘찬 설교로 마음을 흔드시는 분
지금은 투싼 지역에서 목회를 하신다고 들었는데..
연락 안한지도 꽤 되었네
이분에게는 세명의 아들이 있는데
역시 미쿡 사람들이라 그런지 제 나이보다 10살은 넘게 먹어보이는
아우라와 시골이라 그런지 유아틱한 정신세계가 늘 돋보였다
큰 아들은 Music Ministry, 둘째 아들은 공군에서 목회를
막내 아들은 망나니.. ㅋㅋ
아들들과도 참 재미있게 놀았는데..
바로 이 녀석이 내 친구인 Gregory Bousquet다
나를 가장 많이 이끌어진 정신적인 선배이자...
친구이자 가족이 되어준 사람
나이는 나보다 어린 녀석이 늘 누나랑 놀더니
결국 결혼까지 하셨다.. ㅋㅋ
한국에 잠깐 나왔었는데
벌써 아저씨가 되셨다.. 오호라
어서 학교 졸업하고 선교사가 되길 바란다 친구여
그건 그거고.. 오락 좀 고만해라 ㅋㅋ
목사님 사모님과 큰아들의 부인
닭요리는 정말 끝내주셨는데
연휴때면 나를 불러나 배가 터질때까지 먹인 후
잠을 재운다.. 그덕에 많이 부었던게 생각나.. 흑흑
이 교회는 정말이지 보수의 보수를 걷고 있어
포도주는 물론 알코올이 들어간 음식은 입에 절대 안대며
꼬맹이들까지 교회 올때는 정장을 입으며
여자들은 꼭 치마를 입었던 것이 생각난다
그덕에 신앙생활 지대로 했다
다 지켜진 것은 아니지만...
2년간 금주했던 것이 기억난다..
크리스마스 때 목사님의 한마디가 생각난다
"포장지 아까우니.. 내년부터는 신문지로 싸시오.. 선물은 정성이오니.."
부인과 아들들 중얼중얼 ㅎㅎ
Contax Aria 28&50mm Fuji 100 / Reala
Nov. 2002 / Dec. 2003
Trackback URL : http://www.monghee.com/blog/trackback/203














Leave your greetings here.